안중근 선생은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회복시킨다면, 한·청·일, 동양 3국이 서로 협력하여 동양의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의 아시아는 유럽이나 미주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외교적·경제적으로 가까운가? 진정한 평화의 상태에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중일 3국과 싱가포르는 과거사부터 현대 외교 이슈까지 서로 깊숙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동양의 핵심 3국인 한중일과 경제강국 싱가포르는 서로 협력해야만 버틸 수 있는 국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치환경과 문화, 외교적 특수성이 각기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치 갈등에 있어서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사회는 그러한 사람들이라도 서로 면대 면으로 만나,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이해를 시도하는 행위를 하는 사회이다. 삶의 역사와 경제적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폭력적인 사회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힘든데.
지난 한 주 간 우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가 호스트(host)가 되어, 학생 오거나이저로 참여하며 일본의 릿쿄대학, 중국의 베이징대학, 싱가포르의 NUS 대학 학생들과 함께 The ACE 프로그램을 기획 및 진행했다. 호스트의 오거나이저로서 우리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외국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한국적인 경험을 제공해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8일간의 여정 동안 우리는 함께 을지로 3가 일대 골목 사이사이를 걸으며, 노가리 골목의 '만선 호프'에서 소맥을 마시며, 40도의 폭염을 기록한 날 한복을 입고 근정전 앞을 누비며, 원밀리언스튜디오에서 서로의 아이돌이 되어 <REDRED>를 추면서, 평화로웠다. 아니, 평화롭다 못해 싱그러운 청춘이었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서울을 구경하고, 2시간을 기다려 밤늦게 남산타워에 올라간 후에는 김밥천국에 가서 김밥과 김치볶음밥을 나눠먹었다.
더움을 잠시 식혀보고자 아이스 링크장에서 어색한 모습으로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신림계곡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영어로 눈치게임과 369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향해 웃었고, 물장구를 쳤으며, 흠뻑 젖은 모습을 보며 맞이해야 할 이별의 순간을 지연시켰다.
우리 조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Bea가 "원래 여러 명과 여행하지 못해 10살 이후로는 가족과도 여행하지 않고 항상 혼자 했었는데, 너희들과 함께여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라고 말했을 때, Tengyu가 자고 있는 나를 먼저 두고 떠나며 방에 남긴 메시지에서 "네가 나의 첫 외국 친구이다"라고 말해주었을 때, Bohan이 내가 무슨 스토리를 올리기만 하면 "Missing you"라고 보낼 때, 그리고 그저 사진을 넘길 때 정말 지난 난들이 난 꿈처럼 느껴진다.
이어진 폭염과 현장의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우리는 괜스레 미안해지며 그들이 한국을 더 잘,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사실 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한강 피크닉 자체보다는 피크닉에 가서 이야기들, 남산 케이블카 자체보다는 케이블카를 2시간 동안 기다리며 나눈 대화들, 무더웠던 근정전 자체보다는 배스킨라빈스에서 Bea가 혼자 다 해치웠던 파인트 아이스크림이 더 생각난다. 일정은 우리에게 수단이었을 뿐, 정작 중요했던 건 역시 또 사람과 이야기였다.
언어 장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노래방에서 4개국이 돌아가면서 각자 나라의 노래를 부르고, IDD(International Drinking Day)에서 소맥을 말아주며 술 게임을 하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무언가 했다는 그런 기분을 가지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시간이면 로비에 만나 IDD를 하러 갈 시간인데... 하면서 모두의 약간 상기된 얼굴을 떠올린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면대 면 대화로부터 비롯된다. 소통을 하려는 시도로부터 우리는 이해의 첫 단추를 꿰맨다. 외면과 배제, 은폐가 아니라 관심과 포용, 개방이 이질의 감도를 낮춘다. 마치 Z'Teng이 좋은 선생님처럼 팀플에서 여러 명의 의견을 경청하며 칭찬해 주고, Utako가 여고생처럼 약간은 어색한 한국말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Shintaro가 영어와 언론학을 더 공부해서 UN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Taito가 한국의 술 문화가 부러워 우리와 술 게임을 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을 때, Mana가 노래방에서 나처럼 졸리고 피곤하지만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자리를 뜨기 싫다고 말했을 때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Himari가 사려 깊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미소와 따뜻하게 항상 칭찬해 줬을 때, Selwyn이 특유의 유쾌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리드해 줬을 때, Revata가 화채를 만들 때와 돗자리를 접는 것을 도와줬을 때, Yiqing과 Jialing이 Bea 때문에 간 응급실에서 스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Miiad가 "네가 나의 진정한 보스다"라고 말해줬을 때, Suehyung과 Mingyu이 "승환이 형이 우리의 아빠"라고 말해줬을 때, Juyeon과 Soyeon, Junwoo가 십 년 만에 만든 수박화채를 모두가 맛있게 먹어줬을 때, Chaeyeong이 우리의 낭만적인 순간을 기록해 줬을 때, Tiqnpei와 Tengyu가 우리와 계속 소통하고 싶다고 SNS 계정을 만들었을 때 나는 또한 무한한 보람을 느꼈다.
Jay Cin이 싱가포르에는 계곡이 없는데 이 계곡 경험이 정말 특별하다고 말했을 때, Bohan이 'maybe'가 아니라 'definitely' 우리가 꼭 만나야 한다고 했을 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수로 6년간의 대학 생활에서 단연코 이번 여름, 꿈같았던 순간이 가장 잊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벌써부터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조금씩 잊히는 중이라는 생각이 슬프게 한다. 우리와 이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만남이 있다는 상투적인 말도 이번엔 큰 위로가 되지 못하는 듯싶다.
무엇보다도 다사다난했던 8일 밤을 꼬박 함께해 준 서울대 오거나이저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고마움을 전한다.
낭만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이 여름을 기억하기에는 저 단어들이 우리를 품지 못한다. 그저 '꿈'이었다는 추상적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과, 아쉬움과, 뭉클함을 애써 흉내 내본다.
우리가 안중근 선생이 말한 동양평화를 소소하게 이룬 것이 아닐까?
발행일: 2026.08.11.
수정일: 2026.08.16.